회상록
난 랩과 힙합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다.
외국 힙합에는 돈, 총, 여자, 욕을 빼면 남는게 없고, 외힙의 영향을 받은 한국 힙합과 랩 뮤직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헀다. “내가 제일 잘났다”, “난 너보다 돈이 훨씬 더 많다”, “네 여자친구를 뺏을 수 있다” 와 같이 경쟁에서 이겼다고 여기저기 뽐내는 클리셰적이면서 복사기로 찍어낸 듯한 역겨운 가사들은 듣기가 힘들다. 차라리 찌질함과 우울함으로 포장된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발라드가 좋다. 그리고 힙합과 랩이 주류가 되어가는 사회를 보면서 조금 슬퍼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조광일을 알게됐다. “암순응”을 처음 들었을 때는 촬영과 영상 기법에 매료됐고, 두 번째 들었을 때는 가사가 와닿았다. 돈을 좇기보다는 자신이 정의하는 “랩”을 추구하는 그의 열정과 신념, 그리고 그것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부 담겨있었다. 내가 알고 있었고 단정 지었던 랩과 힙합과는 전혀 달랐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그가 멋있었다. “회상록”에서는 성공을 위해 “랩”이라는 본질적인 이상 보다는 인맥을 통해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자각하고 반성과 성찰 그리고 노력을 통해 성공을 결국 이루는 서사를 들려줬다.
조광일의 노래를 듣고나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렇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적이 있었나?”
어렸을 때, 나는 “희생”, “배려”, “봉사” 라는 가치가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배웠으며 칭찬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 삶의 기준을 타인으로 잡아왔었다. 뭘 해야 저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줄까? 어떤것이 칭찬받을 만한 행동인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이 외교관이 되라 하셔서 외고를 갔고, 대학은 최소 SKY는 가야한다고 하셔서 연대를 나왔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해서 놀았고, 군대 갔다와서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해서 공부를 했다. 적성에 맞는 공부를 찾다보니 데이터 분석과 코딩을 하게 되었고, 이 분야는 석박사 학위는 최소한 있어야 한다고 해서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취업을 하고 나니 이내 기쁨보다는 공허가 찾아왔다.
“난 이제 뭘 해야하지?”
Existential Crisis가 찾아왔다. 항상 내 감정을 억누르고 욕심을 참아오며 살았더니, 이제는 욕심이라게 없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 지는 확실히 알겠으나,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대학생 때부터 공백기가 거의 없이 연애를 꾸준하게 한 것이 확실한 목표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조광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 도, 그가 꿈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