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창세기의 창조 설화에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가 있다.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에덴 동산 한 가운데에 있는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서 인간은 신에게 불복종을 하게 되고 “원죄”를 얻게 됐으며 선과 악을 알게 됐다고 한다.
선과 악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과 함께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며 성품 자체는 악하다는 성악설, 그리고 선악은 타고난 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여건에 따라 인간이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성무성악설은 흔히 알려진 주장들이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족을 살해하는 사람, 형편이 어려워도 기부와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선악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마다 나는 한가지 의문이 항상 든다.
사람들이 말하는 선(善)과 악(惡)의 정의는 대체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의 선악은 마음이나 행동이 “좋고” “나쁨”이다. 이분법적인 개념이며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수가 동의하는 보편적인 “선”과 “악”은 존재할 수 있으나 개개인의 욕심과 입장에 따라 선악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임대차 3법만 봐도, 집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한 법이 된다. 집 값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는 재계약 거부가 불가하며, 전세금도 5% 이내로 밖에 올리지 못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는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반하는 나쁜 법이다. 반대로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값이 올랐음에도 적은 돈으로 계약 연장을 할 수 있으므로 선한 법이다. 선악은 항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재밌게 본 “Ozark”라는 미드에서는 인물들의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입체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이 세계는 현실과 유사하다. 주인공 마티 버드는 착실하게 살아왔으나, 성공과 돈을 위해 마피아의 돈세탁 맡았고, 아내 웬디 버드는 외로움을 못이겨 다른이와 바람을 폈고, 가족을 위해 타인에게 음모를 씌우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웬디는 “사람이 악을 선택할 때는 다른 (올바른) 길이 보이지 않고, 그것이 유일한 길로 보여질 때”라고 한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배고파 죽겠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욕구와 필요에 의해 움직인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선과 악은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여부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한다. 부동산 임대차 3법은 누구에겐 악법이고, 누구에겐 선한 법이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을 무시하여 경제적 대실패를 했으며 소수의 욕망에 의해 독재정치로 끝났다. 모두가 행복하고 선하게 살 수 있는 이상주의는 실패했으나, 자본주의 체제는 욕망을 소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성장을 했다. 다수의 욕망인 “정의”는 사회적 질서를 확립했다.
절대 선은 없으며, 절대 악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우린 모두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이다.